덧붙이는 글 | 함의찬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
- 등록일 :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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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이 멈추지 않는 탓일까"... '뇌가 썩는'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
나이키 신은 상어 등 1천만회 조회수 기록하기도, 국내선 '골반이 멈추지 않는' 영상이 엉뚱한 인기

▲‘트랄랄레로 트랄랄라’(왼쪽)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오른쪽)동물과 사물, 과일 등이 무작위로 합성된 '이탈리안브레인롯' 콘텐츠 대표 캐릭터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치한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콘텐츠는 빠른 속도로 인기를 끌어모으다 순식간에 다음 유행으로 대체된다.
올 상반기에는 몽둥이를 든 나무 괴물, 유명 브랜드 운동화 신은 상어 등 이상한 AI로 만든 이미지에 말이 되지 않는 이탈리아어 음성으로 구성된 영상의 '이탈리안 브레인 롯(Italian Brainrot)' 밈(meme)이 소셜미디어를 강타했다. 'ItalianBrainrot' 태그로 인스타그램에서만 이달 기준 7만8천여 개의 글로벌 게시물이 업로드 됐다. 이 중 인기 게시물 조회수는 1천만 회를 넘긴 것도 있고 100만 회를 넘긴 것도 다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간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지난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브레인롯(Brain Rot)'을 선정했다. 직역하면 '뇌가 썩다'는 의미인데, 현대인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저급한 콘텐츠를 과잉 소비하는 현상을 우려하며 등장한 표현이다. 의미 없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시청하며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에 '이탈리안'이 합쳐지면서, 사람들은 뇌가 멍해지는 콘텐츠를 즐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튜브에도 관련 태그를 포함한 동영상이 현재 80만여 개에 달하며, 해당 콘텐츠를 주력으로 제작하는 채널 수도 13만 개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회수 역시 인기 콘텐츠의 경우 대부분 수백만 회에 이르고 있다.
이 밈은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해, 특정 동물과 사물·과일 등을 합성한 캐릭터를 기본으로 한다. 이탈리아어식 이름을 부여하고, 각 캐릭터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이탈리아 억양 내레이션, 고유의 노래, 조잡한 소환 효과 등을 더해 하나의 '이탈리안 브레인 롯' 캐릭터를 완성한다.
이런 추세는 국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관련 인형, 피규어, 블록 등 굿즈를 비롯한 2차 창작물이 쏟아지며 그 광범위한 인기를 증명했다. 1천만 회의 조회수를 올린 한 게시물은 축구 유니폼을 착용한 가족 단위의 '브레인롯'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콘텐츠로, 남편 캐릭터가 운전 중 별다른 맥락 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브레인롯' 콘텐츠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가장 최근에 SNS를 강타했던 '내 골반이 멈추지 않는 탓일까?' 영상 역시 엉뚱한 자막과 함께 아무런 맥락 없이 등장인물이 직접 혹은 AI를 활용해, 골반을 흔드는 콘텐츠다. 2014년 발매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 AOA의 '짧은치마'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시청자들의 뇌리에 해당 콘텐츠가 더욱 강력하게 남도록 중독성을 유발했다. 대표적인 '브레인롯' 콘텐츠인 셈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현대인들은 왜 이처럼 '유치한' 콘텐츠를 선호하고 열정적으로 소비할까. SNS 주 소비층의 하나인 20대에게 물어봤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이아무개(23)씨는 "맥락 없는 언어와 맥락 없는 스토리가 자극적으로 다가왔다"며 "사실 유행한다길래 더 본 것도 있다"고 답했다. 대학생 임아무개(23)씨는 "다들 재밌어해서 계속 보다 보니 웃겼다"며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해줄 때 어리둥절한 반응이 특히 재밌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아무개(28)씨는 "험한 표현들이 유머로 소비되는 요즘, 조금 유치하지만 장난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소재"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뭔가 어이 없는데 그게 오히려 재미로 다가온다"거나 "캐릭터가 무슨 짓을 할지 종잡을 수 없어서 흥미롭다"는 20대도 있었다.
한림대학교 심리학과 최훈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현대인들이 유치한 콘텐츠에 열광하는 것은 인지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적 회복을 경험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가족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치는데 이럴 때는 의미를 찾겠다고 명작 영화를 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인지 자원이 소진된 상태에서 정서적으로 쉬었다는 느낌을 주는 콘텐츠를 찾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있었던 인간의 공통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콘텐츠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최 교수는 "'숏폼' 콘텐츠처럼 단시간에 반복적으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영상은 뇌를 일종의 도파민 중독 상황으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그런 영상에 집착하게 되고, 주의력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설탕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해가 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얼마나 소비하느냐의 문제"라며 "과잉 자극 시대에 자신의 주의를 주체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없다면 결국 자극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렸을 때 심형래 개그에 열광했던 세대도 멀쩡히 성장했듯, 브레인롯 열풍에 너무 과민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개인을 쥐어짜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개인의 자기 통제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이상규 교수는 "우리 뇌는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며 "아무 부담 없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뇌는 더 쉽게 접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남들이 다 아는 유행 밈을 함께 소비하면서 소속감을 얻고, 복잡한 서사나 의미 대신 단순하고 직관적인 자극을 통해 일상의 부담을 잠시나마 잊는 것"이라며 "재미와 소속감, 공감대는 우리 뇌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들"이라고 전했다.
건강한 소비와 중독의 경계에 대해 이 교수는 "일상생활, 사회적 기능, 학업 기능, 관계 기능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건강한 소비"라며 "일상 기능에 방해가 되고 있음에도 조절하지 못하고 지속한다면 중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짧고 자극적인 '숏폼'은 집중력과 충동 조절 능력을 저하시킨다"며 "약물도 작용 기간이 짧을수록 중독이 빨리 되는 것처럼, 긴 호흡으로 이완하고 산책하고 명상하는 것이 중독 치료의 한 방안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특히 경쟁도 많고 불안하니까 이럴 수밖에 없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친구들, 주변인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들도 더 많아지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는 핑계로 숏폼으로 시간을 대부분 허비한다면 그만큼 자존감과 의미 있는 삶으로부터 멀어진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상규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 대부분은 술 마시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누가 권해서 마신다고 이야기한다"며 "가끔은 자신을 성찰하고, 지금 여기서 나는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긴 호흡으로 천천히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고 당부했다.
함의찬 대학생기자